김재홍 석좌교수 [제2회 세계ESG포럼(WIF) 기조연설문 요약]

“한국 ESG의 정신적 바탕과 미래 전망”

기업의 ESG 경영이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이제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ESG에 대해 유럽에서 건너 온 것이라고만 볼 게 아니라 한국의 선구적 기업가에게 내재돼 있는 사회봉사와 상부상조, 그리고 인재양성과 ‘기업보국’의 정신을 재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연구와 교육의 사명이다. K-ESG의 정신과 철학을 만들고 씨앗을 파종한 선구적 기업가로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선생과 SK 창업자인 최종현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위 두 선구자들의 정신과 철학을 심도깊게 연구하여 K-ESG 모델을 정립하고 전세계에 이를 널리 알려 ESG-한류로 확산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 기업가 1세대 중 위인 반열에 꼽히는 유일한(柳一韓 ‧ 유한양행 창업자) 선생은 일제식민지배 시기 박용만 서재필 등과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그는 미국에서 활동하면서도 민족의식이 강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서재필이 만세운동에 호응하기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소집한 한인연합회의에서 이승만이 미국 국가를 부르자고 제안한데 크게 실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방 후 유일한은 경영의 목표를 기업자체의 수익과 성장에만 두지 않았으며 인재 교육과 사회 공헌에 투자했다. 단순한 기업가이기 보다도 항일독립운동 정신에 바탕한 기업경영의 신념을 일관되게 지켰다. 그는 기업의 윤리경영과 모범 납세를 실천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아래서 정치자금을 바치지 않아 그 보복조치로 세무조사를 당했지만 추호도 탈세 혐의가 없어 되레 국민훈장을 받았다. 그는 독재정권에 정치자금 공여를 거부했지만 산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큰 돈을 쾌척했다. 유한공고와 유한대학교를 설립 운영했고 많은 공익재단들에 여러차례 거금을 기부했다.

유일한은 타계하기 전 병상에서 일가 친척들을 모두 해고하고 주식 등 전재산을 사회 환원해 가족이 유한양행의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뒤 눈을 감았다. 지금도 유한양행 그룹의 기업들은 유일한 창업주 가족들의 상속 경영인을 찾아 볼 수 없으며 공채입사 직원들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어왔다. 이는 일제 치하와 해방 후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정경유착, 족벌경영, 회계부정, 노사분규, 탈세 등으로 얼룩져 온 일각의 기업 풍토를 감안하면 매우 드문 모범경영 사례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K-ESG의 정신적 뿌리라 할 수 있다.

유일한이 독립운동가형 기업가라면 20세기 기업인으로서 ESG의 초기 씨앗을 파종한 경영인으로 최종현(崔鍾賢) SK그룹 창업주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이 재단이 지금까지 48년 이상 국내장학생 3800여명과 외국 명문대 박사 760여명의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종현은 항상 ‘교육입국’과 ‘기업보국’을 내세웠으며 대규모 사회공헌 기금의 조성에 앞장섰다.

그는 한국의 장묘 문화로 산림이 황폐화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평소 남다른 나무사랑으로 대규모 조림사업을 벌였다. 장묘 문화가 산림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솔선해 화장하도록 유언하고 대규모 화장시설을 지어 기증하기도 했다. 이는 자연보호를 솔선수범한 것으로 선구적 ESG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화장에 대해 거부감이 많았으나 대기업의 총수가 스스로 화장을 유언한 것이 널리 알려져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이같은 기업인의 족적을 K-ESG의 정신적 및 사상적 바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SG가 기업경영의 글로벌 가치체계로 떠오르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내세우며 그것을 한국에 앞장서 도입한 전도사 역할을 한 것도 우연치 않은 일이다. 최종현 창업주의 2세로서 그 기업가 정신을 계승한 것이며 이는 또한 SK그룹이 기업경영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세계의 ESG, 시작과 현단계 :

<브룬트란트 보고서…미래세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오늘날 ESG의 세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등장 배경과 확산 과정을 살펴 보아야 한다. 유엔과 중요한 국제기구들이 발표한 보고서 등을 분석해 공유하고 기본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SG 교육은 공교육의 대상 학생 뿐아니라 기업, 대학,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모든 구성원, 그리고 일반시민 대상으로 국민 전생애를 통한 사회화 일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같은 ESG 교육의 교과 내용으로 서너가지 문건을 꼽을 수 있다.

첫째, 1987년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공동 채택한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일명 브룬트란트 보고서)가 기본 개념서에 해당한다. 이 보고서에서 ESG의 핵심 개념인 “지속가능발전”(SD : Sustainable Development)이 처음으로 제시됐다. 이 보고서는 “미래세대가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반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재세대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 ‘SD’”라고 개념 정의했다. 스웨덴의 환경운동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미래세대가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반을 훼손하면서 돈과 경제성장의 신화만 말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SG의 국제표준 ‘ISO 26000’ 실행은 사회개혁 효과>

둘째, 브룬란트 보고서 이후 세계 ESG의 발전에 핵심적 지침이 된 문서는 국제표준화기구가 2010년 11월 ISO 26000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지침이다. 여기서 ESG 실행의 가이드라인 성격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표준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산업계, 정부, 소비자, 노동계, 비정부기구 등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투명한 지배구조 ▶인권 경영 ▶노동관행 ▶친환경 ▶공정거래 ▶소비자 이슈 ▶공동체 참여 및 개발 등 7대 의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규정했다. 77개 참여국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93% 찬성을 얻어 국제표준으로 확정했다.

이같은 ISO 26000을 제대로 실천할 경우 어느 개혁적인 정부나 시민단체도 하기 어려운 실질적인 사회전반의 개혁을 이루어내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K-ESG가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국제표준을 관련법률들에 반영해야 한다. 이는 국내 금융기관과 자산운용사 뿐 아니라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데도 필수 요건이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다. 장차 정부 정책과 국회의 관련법률 개정이 그런 방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ESG 실행에서 앞서가고 있는 EU가 2023년 3월 적용에 들어 간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 (CSRD :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을 특히 기업과 정책당국, 그리고 투자기관이 숙지해야 한다. 이 CSRD는 기업의 연차 보고서에 ESG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EU는 이미 2022년 3월부터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제(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한국 기업이 이런 지침들을 지키지 못하면 교역과 투자 및 소비고객 유입에서 장벽에 막힐 수밖에 없다.

한국 ESG의 미래 전망

–국가전략적 대처…정부 정책과 국회의 ESG 관련법률 개정>

한국 ESG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이 자율적 경영으로 주도해 가도록 정부와 국회가 정책과 법률로 지원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 ESG 경영을 독려하는 것이 기업에 규제와 같은 멍에로 부과돼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방향의 자율에 맡겨서도 곤란하다. ESG 경영에 대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나서야 하며 이것을 법률과 정책으로 뒷받침하도록 상호 조응하는 관계가 형성돼야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기업이 ESG 경영의 초기 동력을 만들고 여기에 정책과 법제적 지원이 이루어지면 투자자와 소비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따라붙게 되며 자연이 기업의 수익이 올라간다. 이것이 바로 ESG 생태계의 선순환으로 자리잡는 과정이다. 갈수록 기업 못지않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공공ESG도 그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투자와 소비가 세계경제 시장에서 유입된다는 점을 생각해도 국익 창출의 국가전략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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